고령 운전자 사고 증가와 대책: 우리 사회의 도전과 해법
최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가해 차량의 운전자인 차모(68)씨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페달을 잘못 밟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틀 후에는 70대 운전자가 모는 택시가 병원 응급실로 돌진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고령 운전자 사고의 빈번함과 그 이유
고령 운전자에 의한 인명 사고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면허 제도를 손봐 고령자 운전을 강제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령만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이며, 대중교통이 취약한 지역에서는 자가 운전 외에 이동수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참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곧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는 점을 감안해, 해외처럼 교통 약자 전반을 고려한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확충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한국의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현황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3만 9,614건으로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연령대별 사고 건수만 비교해 "나이가 들수록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고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손호성 부교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동차 면허 소지자 대비 가해자 교통사고 건수'(2019~2022)를 보면, 50~60세와 61~64세 면허 소지자 중 사고 건수 비율은 각각 0.7%와 0.8%로, 31~49세(0.5%)보다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60세 이상 고령층을 비교하면 연령별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80대 이상이 되면 오히려 비율이 낮아지는 등 나이와 사고율이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고령화 사회와 고령 운전자 문제의 대두
그럼에도 고령 운전자 사고가 빈번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나라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은 내년부터 한국이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경찰청도 2025년 고령 운전자가 약 498만 명, 2040년에는 1,316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일본의 고령 운전자 대책: '사포카S' 정책
고령화율 세계 1위인 일본은 이미 고령 운전자 증가를 고려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사포카S'(안전운전 서포트 카S)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서포트 카는 조작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비상 자동 제동 장치, 가속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 등 ADAS가 포함된 차량을 말합니다.
이 중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주행 중 분당 엔진 회전수(RPM)가 크게 증가할 때 엔진 연료를 차단해 급발진을 막는 기술입니다.
서포트 카는 제동 장치가 작동하는 속도, 대상 등 성능에 따라 3가지(베이직, 베이직 플러스, 와이드)로 구분됩니다.
주요 제조사들은 기존 생산 모델에 장치를 추가로 장착해 판매하고, 정부가 이를 인증해 홍보합니다.
서포트 카 이용은 의무는 아니지만 보조금 지원, 차량 보험료 할인 등 혜택을 주고 교체를 유도하는 식입니다.
앞서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고령 운전자가 서포트 카를 구입하는 경우 최대 10만 엔(약 85만 원), 기존 차량에 장비를 추가로 설치하는 경우 최대 4만 엔(약 35만 원)을 보조해왔습니다.
2022년부터는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한해 서포트 카 한정 면허 제도를 신설해 발급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고령 운전자 대책
유럽연합(EU)은 이달부터 모든 신차에 대해 비상 제동 장치와 센서나 카메라를 통한 후진 보조 장치 등 ADAS 장착을 필수로 규정했습니다.
2026년부터는 신차 안전성 평가 프로그램인 '유로 NCAP'에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 가속'에 대한 평가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EU는 새 규정을 통해 2038년까지 2만 5,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하고 14만 명 이상의 심각한 부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한국의 고령 운전자 지원 방안
국내에서도 특정 연령층에 대해 운전을 제한하기보다 운전 약자별로 사정을 고려해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라남도는 지난해부터 70세 이상 운전자가 차량에 차선 이탈 및 전방 추돌 경고 등을 안내하는 장치를 설치할 때 비용 50만 원 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도 관계자는 "최근에 나온 차량에는 대부분 있는 기능이지만, 고령자들이 이용하는 노후한 차량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며 "교통 문제로 차가 없으면 사실상 생활이 어려운 지역 노인을 대상으로 올해는 666대에 대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의 조언: ADAS 기술의 중요성
전문가들은 ADAS 기술 개발 및 장착 의무화를 통해 교통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은 고령자의 취업 비율이 높은 국가로 이동권을 막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ADAS 적용을 활성화해 운전 약자 전반에 대한 안전운전을 지원해야 예상치 못한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12월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 및 평가 기술 개발 연구에 착수해 다음 달 말까지 완료할 예정입니다.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밟아도 긴급 스위치나 음성 등으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 제동 장치나 급발진을 규명하는 페달 블랙박스 등 설치에 대한 의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교수는 "해외에 비해 도입 시도가 늦은 경향이 있다"며 "시청역 사고 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고령 운전자가 보조 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우선 지원하고, 설치 시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식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